반응형

남수단 1주 차

1. 들어가기 전
2. 일상
3. 마무리

 

1. 들어가기 전

모든 내용은 절대 대한민국 국군, un 평화유지군의 의견이 아닌 고작 8개월 활동한 개인의 생각입니다.  "보기가 불편하거나 생각이 다르면  나가세요." 
일기를 중점으로 주단위로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남수단에서 찍은 사진이 꽤 있으나 보안에 문제없는 사진만 올리려 한다.
군 관련 내용은 모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만 작성하였으며 군기밀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하거나 뺏다.

 

고정 출연 인물 정리

권씨(통신 유선병, 전역 후 호주에 거주 중), 정씨(TOD 운용병으로 함께 작전 수행함, 전역 후 소방공무원 준비 중)

 

2. 일상

남수단 1주 1일 차

아침 점호를 하지 않고 임시캠프로 배달된 조식을 먹었다. 그리고 캠프 생활관을 정리하고 07:30에 보르로 출발했다. 우리는 1제대(UN 항공자산으로 이동)와 달리 육상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때 UN 협조 차량(25인승 미니버스)과 한빛부대 차량(MP, 진중버스) 중 나는 진중버스(앞에는 트럭, 뒤에는 무려 하차벨 버튼이 있는 시내버스로 되어있는 혼종)를 탑승했다. 인도군의 경호를 받으며 주바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신호등도 없고, 교통경찰도 없는 상황에서 옆에 오토바이들이 달라붙어 너무 혼잡했다. 

 

시내를 벗어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지평선과 길게 뻗은 도로가 함께 보여 미국 서부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 비포장된 도로에 도착하니 보르에서 온 몽골군을 만나 경호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이동하는데 해가 떠서 날씨가 더워졌다. 버스 에어컨은 가스가 없는지 뜨거운 바람이 나왔고 창문을 여니 흙먼지가 들어와 결국 창문을 닫고 찜통 상태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비포장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벨트 안한 간부님이 앞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첫 번째는 ARC가 써진 빨간 트럭이 눈에 계속 보였는데 알고 보니 남수단 도로 공사 회사였다. 10년 동안 남수단은 UNMISS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한 것에 정말 희망이 보이는 나라였다. 두 번째는 이동하는 동안 여러 부족 마을을 봤는데 모든 마을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와 손을 흔들어 줬다. 정말 열악한 아프리카에서도 아이들의 웃음과 환영을 보고 많은 생각에 빠졌다.

 

(이동하는 동안 두 가지 이유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첫 번째는 주바 시내에서는 함부로 사진 촬영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 왜냐하면 대통령시설물들이 많아 잘못 사진 찍으면 현지경찰이 차를 세우고 조사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 제대 때 이런 상황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남수단 부족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기 때문에 사진 촬영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래서 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진중버스 앞에서 정씨와 함께 / 진중버스 안 / 이동중간 휴식 때

 

 

13:30분 예정시간보다 1시간 빠르게 보르 한빛부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조를 나눠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격리되어 전투식량을 먹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고 각자 생활관으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이곳은 천국이었다. 기본 배식이 있고 추가로 빵(모닝빵,또띠아,식빵), 소스(케첩, 타바스코, 소이, 스위트 앤 사워 등), 음료(과일 종류별, 탄산 종류별, 우유), 과일(망고, 사과), 과자 기타 등이 모두 무제한이었다. 정말 카투사가 부럽지 않았다.

전투식량 / 생활관 복도 / 생활관 첫 입성때 본 15진의 낙서 (첫문장은 바로 이해했고, 두번째 문장은 한달만에 이해했고, 세번째 문장은 3달만에 이해했다)

 

 

그리고 행보관님이 미리 구매해 주신 MTN 유심을 받아 한국과 연락하다 취침시간이 되자 바로 잠들었다...

 

 

남수단 1주 2일 차

일기가 날아가버려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과를 진행하지 않고 부대 내 대청소를 실시하며 시차적응 및 휴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날 확실한 거 하나는 기억이 난다. 무선반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지금까지 무선반장님이 MSR작전을 나가셨는데 무선반 행정업무가 많아 2일 뒤부터 내가 MSR 작전에 바로 투입된다고 하셨다. 몇 년 전 (블라인드) 상황 때 무선병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간부가 나갔지만 원래 무선병이 가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MSR 작전이란??

MSR 작전은 한빛부대의 주요 UN 과업 중 하나로, 보르-피보르-아코보를 이어주는 총 307km의 Main Supply Route(주 보급로) 보수 작전이다. 이 보급로를 통해 UN 소속 기관, NGO 기관, 남수단 정부 기관 인원 및 물자를 수송하며, 또한 민간인들의 이동에도 사용된다. 한 달 동안 항공자산으로 이동해야 할 물자와 인원을 주 보급로를 통해 하루 만에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UNMISS에서 꽤 중요한 작전이다. 대한민국 육군 공병(도로 건설), 특전보병, 수송, TOD, 통신, 통역, 의무 병과의 장병들과 타 국적 UN 평화유지군(16진은 인도군, 몽골군)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남수단 1주 3일 차

말라리아 약 복용으로 인해 약식 아침 점호를 했다. 점호가 끝나고 3km를 뛰었는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숨이 찼다.(변명을 하자면 외곽 음식물 처리장 지나갈 때 냄새 맡고 호흡이 꼬였다) 그리고 정씨(TOD)가 TOD 장비를 끄러 가길래 따라갔더니 기지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철조망을 넘어 침수된 한빛 학교가 보였다.

한빛학교 꼬르륵

 

 

아침을 먹고 간단히 단위대 청소를 하고 2제대 OT에 참여했다. OT에서 레바논 2진, 남수단 1,2진 파병 경험이 있으신 단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어서 참모부의 여러 설명도 들었다. 공보과에서는 앨범 제작에 대해 설명했고, 공사과에서는 MSR작전과 침수된 한빛 학교 이전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UNMISS 동부사 컴파운드 안에서 이동 제한이 없다고 설명해 줘서 주말에 동료들과 나가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쉬려 했는데 바로 단위대 작업에 차출되었다. 먼저 컨테이너에서 태양광 패널을 내리고 합판을 날랐다. 그리고 다목적실로 사용할 컨테이너를 청소하고 창고에 비품 재고 조사와 정리를 했다. 아직 적응이 안돼서 너무 더웠다.

 

일과가 끝나고 MTN 통신사의 데이터 1gb 5시간 상품을 구매했다. 나름 아끼며 사용했는데 다 사용해 버렸다. 심지어 계속 데이터가 얼마나 남았는지 신경 쓰다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강박이 생겨버렸다. 재밌지도 않고 오히려 짜증이 났다.

 

병사들이 단체 텔레그램을 확인하지 않아 의견 종합이 늦어지게 되었고 저녁 점호 때 단위대 대장님이 주의를 주셨다. 소통을 위해서 일과 중 휴대폰 소지를 허락해 주었는데 종합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앞으로 의견 종합이 있으면 먼저 확인한 병사가 말해주자고 약속하였다.

 

 

남수단 1주 4일 차

MSR 작전인원은 작전 지휘관의 작전 설명을 들어야 해서 따로 아침 점호를 하는데 위치, 시간을 몰라서 막 준비해서 갔더니 이미 점호가 끝나있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씻고 장비를 챙겨 차량에 탑승해서 이동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신기하고 기지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10km 거리의 작전지역에 도착해서 무선반장님께 무선 장비를 인계받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오전 무전을 혼자 진행했다.(우리 무선반장님은 무선병을 던져놓고 강하게 키우셨다. 알아서 잘해야 한다, 못하면 뒤지는 거다.  그래서 난 뒤졌다

작전 출발 전 (앞에 유치원생만한 크기의 황새인데 부대에 많다)

 

 

계속 무전 대기하고 있는데 UN 소속 차량들이 오더니 통역병이 대화를 나눴다. 나중에 들어보니  UN 담당자와 남수단 종글레이주지사, 기자, 경찰, 군인이었다. 그리고 작전구역 좌측에 평탄화 작업을 부탁했다. 평탄화를 시작하자마자 습지 안에 있던 쇠파리가 엄청나게 올라왔다. 통역병이 모자를 벗어 휘두르며 1시간 동안 잡는데 숫자가 줄지를 않았고, 무선반장님도 쇠파리가 오늘처럼 많은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말벌 크기의 파리가 몸에 붙어 전투복을 뚫고 물어버리니까 너무 아팠다.(원래 소 피를 먹는 파리여서 전투복으로 보호가 안된다) 심지어 몸에 붙었을 때 몸을 흔들어도 도망가지 않아서 직접 털어내야 한다. 제대로 물리면 정말 아프고 며칠 동안 붓는다.

작전 중 / 평탄화 작업(아래는 쇠파리 영상)

 

 

 

점심쯤 주둔지에서 식사추진을 해줬지만 쇠파리 때문에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차라리 차에서 전투식량 먹는 게 더 편할 거 같다.

 

오후 작업을 하는데 총을 소지한 민간인들이 지나다녔다. 다행히 경비대 인원들이 제지를 해서 작전지 근처로는 못 가게 막았다. 통역병에게 듣은 바로는 야생동물 사냥, 본인 보호(그들 주장) 기타 이유로 들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총이 장난감도 아니고... 실제로 작전중에는 거의 매일 총성을 듣는다.

숲속에서 총기 소지한 애들이 나타난다. / 로카티 파밍해서 입고 다니는 현지인

 

하루종일 땡볕에서 무전 대기하는데 덥고 쇠파리 피해 다녀서 힘들었다. 

 

남수단 1주 5일 차

오늘은 다행히 시간 맞춰 MSR작전 점호에 갔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장비를 챙겨서 작전지로 갔다. 이동하는 중에 위성장비 점검 교신을 하는데 지통실에서 답이 없었다. 알고 보니 지통실에서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였다.

 

무전대기를 하다 점심을 먹는데 앞으로 식사추진을 받을 것인지 전투식량을 먹을 것인지 투표를 했다. 전투식량 선택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앞으로 전투식량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군종목사님과 군종병이 팥빙수를 만들어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염없이 무전대기 하던 중 의무대기 중인 내과 군의관님과 말라리아 이야기를 나눴다. 말라리아 환자가 계속 있어서 원인을 찾고 있는데 아마 배수로 때문인 거 같다고 하셨다. 나중에 복귀하니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남수단 1주 6일 차

아침에 7시 30분에 기상해 UN 동부사 컴파운드를 둘러보고 브런치를 먹었다.(이 당시 한빛부대는 장병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주말에는 2시간 늦게 일어나서 점호하고 브런치를 먹었다.) 

식당 / UNMISS 동부사 컴파운드 안에 있는 한빛마켓(현재는 운영 안함)

 

 

오후에는 잠깐 쉬다가 한빛부대 PX에서 생활용품을 구매했다.(한빛부대 px에는 매우 제한적인 생활용품과 한국담배를 팔고 있다. 사실상 담배가게인데 면세여서 한 갑에 700원 정도였던 거 같다.)

담배가게

 

저녁에 한국에서 가져온 usim 요금 조회를 했더니 20만원이 나와있었다? 분명 무료로밍으로 한 달 2200원이었는데.. 전산오류인가..?

 

 

남수단 1주 7일 차

아침에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고 다른 동기의 생활관에서 뽀글이를 해 먹었다.

 

에어컨을 18도로 해놓고 자서 그런지 감기 증상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생활관 동기들이 모두 비슷했다. 내일 작전 나가야 해서 정씨가 준 약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3. 마무리

쇠파리 PTSD, 파병부대 면세 담배의 가격은 700원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