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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3주 차

1. 들어가기 전
2. 일상
3. 마무리

 

1. 들어가기 전

모든 내용은 절대 대한민국 국군, un 평화유지군의 의견이 아닌 고작 8개월 활동한 개인의 생각입니다.  "보기가 불편하거나 생각이 다르면  나가세요." 
일기를 중점으로 주단위로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남수단에서 찍은 사진이 꽤 있으나 보안에 문제없는 사진만 올리려 한다.
군 관련 내용은 모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만 작성하였으며 군기밀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하거나 뺏다.
 
고정 출연 인물 정리
권씨(통신 유선병, 전역 후 호주에 거주 중)
정씨(TOD 운용병으로 함께 작전 수행함, 전역 후 소방공무원 준비 중)
K중사님 (의무대 AMB 수송관으로 함께 작전수행함, 늘 재밌고 친절했던 삼촌)
허씨(공병 통역병, 함께 작전 수행함, 전역 후 라섹함)
공병 3팀장님 (MSR 작전 지휘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군인이고, 상관이고, 어른이다)

 

 

2. 일상

남수단 3주 1일 차

취침시간 동안 나와 권씨가 야간 순찰 근무가 있었다. 그런데 전 근무자가 권씨를 깨워주지 않아서 권씨가 근무에 못 갔다. 또한 권씨가 나를 깨워주지 않아 나도 가지 못했다. 다행히? 나는 어찌어찌 넘어간 거 같은데 아침에 점호 가는데 모 간부님이 "권씨 또 근무 안 왔어!! 도대체 누군데 근무를 안 와?"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저번달 통신요금이 20만 원이 나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MSR작전 투입으로 고객센터와 연락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드디어 오늘 Skype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아침에 전화를 걸어도 시차 때문에 오후인 한국은 고객센터 상담인원이 많아 통화 연결이 어려웠다. 몇 번의 전화 끝에 결국 고객센터와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들으니 n월 1일 전에 더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게 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사전에 공지했으나 내가 확인하지 못한 거였다. 그러나 계속 부탁드리고 상황을 설명드리니 결제 금액을 줄여주셨다.  

 

하루종일 누워서 전역하고 뭐 할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이 당시 내 짬에?), 이 당시 아마 결론은 '학교를 그만두고, 코딩테스트를 준비해서 IT 블라인드 공채를 노린다'였던 거 같다.(내 실력에?)

 

남수단 3주 2일 차

일기도 없고 사진도 없다. 연휴 마지막이어서 운동하고 잠만 잤던 것 같다.

 

 

남수단 3주 3일 차

연휴 동안 푹 쉬니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에 MSR 점호에서 오늘부터는 기존의 정밀 복구가 아닌 급속 복구로 작전을 바꾸면서 먼 거리까지 이동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각자 역할을 배정받았고 나와 통역병 허씨는 공병대장님, 공병 3팀장님을 계속 따라다니면 된다고 하셨다.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사거리에서 모든 차량이 정지했다. 내려서 둘러보니 문명과 오지가 나눠지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곳이었고 대장님께서 무전으로 작전 시작 지점이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갈대밭으로 소차, 지휘차, 도저, 그라인더, 롤러 기타 순으로 진입하였다. 진입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심각한 보급로가 보였고 갈대 때문에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문명과 오지가 나눠지는 곳, 사진 속 내리막길이 오지 입구이다. 

 

 

오전 동안 도저가 갈대밭을 계속 밀어서 온 곳에서 쇠파리들과 벌레들이 올라왔다. 내가 위성장비로 정기교신을 하는데 온몸에 쇠파리가 달라붙으니 신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차 안에서 시도했지만 신호가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mtn 구형 usim을 사용해서 지휘통제실에 작전 상황을 보고했다. (구형 mtn usim을 사용하면 전송속도가 느리고 지연이 심하지만 꽤 먼 거리까지 통신이 된다, 물론 조금 더 멀어지면 끊어진다.)

 

중간에 각자 전투식량을 먹고 계속 작전을 진행했다. 다행히 별일이 없이 시간에 맞춰 철수를 할 수 있었다. 복귀 중에 GPS를 통해 오늘 작전 거리를 확인하니 7km였다. 정밀복구 때는 작전거리가 매우 짧아 우리가 msr작전 완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오늘 작전 완수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주둔지로 복귀 후 쉬고 있는데 "(블라인드), (블라인드) 상황이 발생했고 ㅇㅇ지역 정세가 매우 심각해졌고, ㅇㅇ기지는 추가 방호벽 구축 중"이라고 첩보가 들어왔다. 대장님이 MSR 작전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남수단 3주 4일 차

다시 MSR 작전을 갔다. 오늘은 2개 팀으로 나눠 선발대는 먼저 이동하고, 후발대는 추가 보수를 하며 상습 침수구역 우회로를 만들었다. 나는 선발대와 함께 이동하며 차량용 위성 안테나 시험 운용을 하고 무선반장님은 후발대에서 증폭기를 시험 운용하며 이동했다. 차량용 위성 안테나는 일정 주기로 신호가 죽는 문제가 발생했고 증폭기는 예상했던 통달거리보다 짧아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물론 무선반장님이). 

 

선발대는 침수된 한 곳을 제외하고는 보급로 상태가 좋아 꽤 많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중에 예전에 PKO 센터장님이 "MSR 작전 구역에 거리 표지판을 못 만든 게 후회된다"라고 말하신 게 기억이 났고, '거리 표지판을 DIY 해서 설치'해도 되는지 공병 3팀장님께 여쭤봤는데 웃으면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지 상상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점심을 먹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전투식량이 질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똥이 안 나오는 건 기분 탓이겠지..?

 

선발대에서 3팀장님, 나, 허씨, 일부 인원들이 첫 번째 마을까지 빠르게 정찰을 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마을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있고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마을 주변 NGO, UN 시설 또한 모두 방치되어 있었다.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원래 Anyidi(아니디) 마을 주민들은 우기가 끝나면 마을로 돌아온다고 했다. 과거에 한빛부대도 이곳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들었다. 사람이 없는 마을은 정말 고요했고 시간이 멈춘듯했다.

Anyidi 마을 첫 입성 

 

 

+ UN 관련 단체가 공격받으면 UNHCR(난민기구)에서 식량 공수 작전을 중단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위험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량 공수 작전이란 도로가 없고, 사냥에 의존해서 자급자족이 힘든 지역에 UN 수송기로 식량을 공수하는 작전으로 현지주민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수단 3주 5일 차

MSR 작전 점호 때 '오늘부터 UNMAS(UN 지뢰 조직) 1개 팀도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는 내용과 중장비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오늘 ㅇㅇ 근처에 장비 집적소를 구축하고 현지경찰이 야간에 경계 근무를 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아침에 선발대는 먼저 ㅇㅇ까지 이동해서 장비 집적소를 만들었다. 불도저가 장비 집적소 터를 만드는 동안 나와 허씨는 UNMAS 직원들과 대화를 하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몇 달 전 Anyidi 마을 근처에서 (딩카+누에르 vs 무를레) 교전이 있어 많은 현지인들이 사망했고 모두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져 3주 3일차에 (블라인드), (블라인드) 상황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부족 간 아이들을 납치해서 소년은 반군으로 키우고, 소녀는 성인이 되면 가축과 교환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지평선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납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또한 부족 간의 경계선이 있는데 MSR 작전을 하며 곧 마주칠 거라고 하였다. 만약 이 경계선을 다른 부족이 넘어가게 되면 바로 사살하기 때문에 이번 UNMAS 팀도 소수부족과 타 국적으로 구성했다고 이야기했다.

UNMAS 직원과 경비대 아저씨들 Anyidi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정찰을 끝내고 복귀하는 중 차량용 안테나가 파손되었다. 그래서 교체를 하고 다시 이동할려는데 허씨가 "안테나 교체하는 동안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으니 소지품을 확인해 봐"라고 하였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동하며 확인을 하는데 100m 정도 이동하여 중요한 소지품이 없어진 걸 깨달았다. 보고를 하니 3팀장님이 "이동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거꾸로 이동하면서 확인해 보자"라고 하셨고 도저 운용관, 경비대분들과 수색을 하였다. 10분 정도 지나서 찾지 못했을 때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포기하려고 하였는데 3팀장님께서 조금만 더 찾아보자 하셨고 혹시 몰라 도저 뒤쪽까지 살펴보는데 흙에 반쯤 묻힌 개인소지품을 찾을 수 있었다. 모두 자기 일처럼 도와준 간부님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해 주신 3팀장님께 너무 감사했다.

 

오늘 부대 내 일정이 있어 14시에 복귀를 시작해야 했고 집적소로 장비가 모이고 있었다. 집결지에서 장비를 지켜줄 현지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오지 않았고 지통실에 보고한 후 최소인원만 남은 채 복귀했다. 이때는 몰랐다 이게 얼마나 큰일이 될지. 위성전화를 했지만 지통실에서 이미 현지 경찰과 협의가 되었고 기다리면 올 거라고 했다. 그런데 15시가 되도록 오지 않아서 지통실과 교신을 하니 거꾸로 "현지경찰을 집적소에서 토취장으로 이동시켜라"라고"했다.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했고 15시 30분쯤 "MP가 현지경찰과 동행하여 오고 있다"라는 무전이 왔다. 그런데 16시에 MP만 와서 영문도 모른 채 다시 현지경찰을 데리러 갔다.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지통실과 위성전화를 연결했지만 지통실에서는 "경계하며 대기"하라고만 했다. 17시쯤 예비용 전투식량을 저녁으로 먹으려는 찰나 MP가 현지경찰을 데리고 가고 있으니 복귀해도 된다는 무전이 왔고 바로 철수를 했다.

장비 집적소 / 주둔지로 돌아오는 길 (주둔지 근처)

 

 

붉은 노을을 보며 주둔지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정밀 복구한 길, 보건소 근처 평탄화 작업 한 지역에서 현지인들이 집을 짓고, 요리를 하고, 씻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함이 들고 오늘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잊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복귀해서 ㅇㅇ과 통역병과 이야기를 했는데 ㅇㅇ과에서는 협조를 한 게 맞고, 현지 경찰 권력 다툼으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현지 경찰들도 집적소 근처는 위험하고, 전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내일 오전 10시에 철수한다고 해서 내일(토요일) 경비대, 공병대 최소 인력으로 장비들을 복귀시키는 작전이 추가되었다.

 

 

남수단 3주 6일 차

12월 마지막 날이자, 2023년의 마지막 날이다. 토요일이라 나는 딱히 한 게 없지만 오전에 장비 철수 작전이 있어 부대가 분주했다. 심심하게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한국에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부러웠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TV를 보니 KBS WORLD에서 제야의 종을 치는 모습이 나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후 5시에 식당에서 보는 제야의 종 / 구글 위성 사진을 찾다 우연히 주보급로로 수송하는 화물차량을 발견했다.

 

 

남수단 3주 7일 차

1월 1일 1시에 간부님과 야간순찰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곧 귀국하는 다른 나라 부대에서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한빛 부대도 초청을 받았지만 우리는 작전기간이고 코로나 때문에 참석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게 파티할 때 참석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알고보니 크리스마스때도 축제를 했다고 한다, 축제의 민족인가?)

 

빨간 날이지만 일찍 기상하여 연병장에서 점호를 하고 군종 목사님이 안전기도를 주관하셨다. 그리고 동쪽 철책 컨테이너에 올라가서 일출을 배경으로 단위대별 사진촬영을 했다. 1월 1일인데 딱히 흥도 없고 실감이 안 났다.

1월 1일 일출

 

그리고 다른 동기가 전역의 해가 왔다고 좋아했는데 내후년 초에 전역하는 동기들도 있어서 다 같이 웃지는 못했다. 군생활을 계산해 보니 딱 반만큼 했고 지금까지 했던 걸 한번 더 해야 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3. 마무리

어느 부대나 다 그렇겠지만, 파병부대에서 빨간날은 유독 더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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