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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6주 차

1. 들어가기 전
2. 일상
3. 마무리

 

1. 들어가기 전

모든 내용은 절대 대한민국 국군, un 평화유지군의 의견이 아닌 고작 8개월 활동한 개인의 견해입니다. 
일기를 중점으로 주단위로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남수단에서 찍은 사진이 꽤 있으나 보안에 문제없는 사진만 올리려 한다.
군 관련 내용은 모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만 작성하였으며 군기밀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하거나 뺏다.

고정 출연 인물 정리
권씨(통신 유선병, 전역 후 호주에 거주 중)
정씨(TOD 운용병으로 함께 작전 수행함, 전역 후 소방공무원 준비 중)
K중사님 (의무대 AMB 수송관으로 함께 작전수행함, 늘 재밌고 친절했던 삼촌)
허씨(공병 통역병, 함께 작전 수행함, 전역 후 라섹함)
공병 3팀장님 (MSR 작전 지휘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군인이고, 상관이고, 어른이다)

 

 

2. 일상

남수단 6주 1일 차

오랜 중단끝에 MSR 작전이 재개되었다. 아침에 출발을 했는데 UN 통문을 통과하고 계속 대기하였다. 계속 대기하다 이유를 여쭤보려는 찰나 트레일러에 중장비들을 적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 차량에서 내려 정기교신을 진행하는데 불과 몇 주 사이 통문 밖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원래 비포장도로였던 곳들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회전교차로도 완성되어있었다. 지금까지 한빛부대에서 작업한 도로도 ARC(남수단 도로공사)에서 계속 아스팔트 포장을 할 거라고 했다. 뿌듯함이 들었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장비 적재가 끝나자 바로 몽골군과 함께 Anyidi 마을로 이동하였다. 앞으로 작전을 함께 뛰게 될 몽골군은 장비도 준수하였고 한국군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집결지에서 3팀장님과 몽골 중대장과 상의 후 바로 작전을 시작하였다. 나는 오늘 증폭기 세팅을 바꿔 시험운용을 하는 숙제를 받아서 교신과 시험운용을 동시에 하느라 오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선발대 몽골군

 

 

점심시간이 되어 작전지에서 전투식량을 먹었다. 발열팩을 당긴 후 밖에 두고 차에 앉아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대장님께서 직접 차문을 열고 전달해 주셨다(중령이시지만 탈권위주의셨다). 민수용 전투식량을 먹었는데 양이 적고 칼로리가 낮아서 배가 차지 않았다.

 

오후 작전을 진행하는데 블랙맘바가 튀어나와서 다들 식겁했다. 일단 후퇴한 후 대장님이 중장비를 불러 처리해 주셨다. 진짜 용변처리하러 숲에 들어갈 때조차도 사주경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철수를 해야 하는데 야간 경계를 해줄 현지경찰이 또 오지 않았다. 저번에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위성 전화, 무선 장비 가리지 않고 주둔지에 불나게 교신을 했고 결국 협조과에서 현지경찰 3명을 직접 끌고 왔다. 현지경찰들은 끌려와서도 돈 못 받았다고 본인들에게 직접 달러로 돈을 달라고 했다. 무시하고 인계 한 뒤 해가지기 전에 철수했다.   

 

+ UNMAS 현지 직원이 사냥꾼인 친동생을 직접 소개해줬다.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친동생분은 오토바이 뒤에 사냥한 가젤을 싣고 있었다.

 

 

남수단 6주 2일 차

아침에 통신실에서 장비 챙기고 있는데 3팀장님이 무전으로 나를 찾으셨다. 여유롭게 준비하다 통신사무실에서 급하게 뛰어나갔다. 바로 집결지로 이동했고 정기교신 후 중계기 세팅을 바꿔 시험운용하는 숙제를 진행했다.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잠시 통역병과 바로 옆에 있는 동물뼈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장님이 전방을 향해 전력질주 하셨다. 바로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윙윙' 소리가 들렸다. 쇠파리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계속 둘러보며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데 통역병이 "벌이다!"라고 쏘리를 질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작 내 몸을 보지 못한 나는 이제야 몸을 확인했는데 이미 수십 마리의 벌이 붙어있었다. 놀란 상태에서 옆에 통역병에게 도와달라고 말했고 통역병은 정말 최선을 다해 털어주었다. 그런데 통역병이 먼저 벌에 쏘여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고 나는 모든 장구류를 해제하면서 후방으로 200m가량 전력질주 했다. 끝까지 벌들이 쫓아와서 살고 싶다는 의지만 남았을 때쯤 옆에 통역병이 있길래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다행히 안 쏘이고 다 떨어졌고 차량에 탑승하러 뛰어가던 중 또 벌들이 달라붙어 다시 돌아가 통역병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상황이 진정되고 통역병에게 "너 덕에 살았다!!"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나 3팀장이야.."라고 말해서 그제야 통역병이 아니라 3팀장님임을 인지했다. 잘못하면 3팀장님도 벌에 쏘일 수 있는데 이를 감수하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차량에 탑승하니 대장님은 7방 쏘이셔서 벌침을 뽑고 계셨다. 나는 상황이 진정되고 장구류를 다시 회수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과거에 창문이 없던 중장비를 운용하던 인원이 벌에 수십 번 쏘여 후송 간 적이 있다고....

구경하던 동물 뼈 사진

 

 

점심에 전투식량을 먹고 새로운 집적소로 장비를 옮기기 위해 현지경찰과 이야기를 했는데 현지경찰이 명령받은 적이 없다며 계속 거부했다. 그래서 협조과를 호출하여 해결하고 새로운 집적소를 구축했다. 그런데 무전에서 갑자기 벌 이야기가 나왔다. 도저가 작업 중 땅벌집을 건드려서 3팀장님과 운용관님이 3방씩 쏘이셨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현지인이 나타났다. 우리가 제지했으나 이동하였고 당연히 벌에 공격받다 오토바이를 버리고 도망갔다. 현지인은 다시 오토바이를 회수하러 갔다가 또 공격받아 결국 의무팀이 진료해 주고 방역지원을 해줘서 오토바이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의무팀 방역지원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고 철수를 했다. 계속 작전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EENT쯤 주둔지에 도착했다. 이 날은 벌들 피하느라 기력을 다 써서 씻지도 않고 바로 잠들었다.

 

 

남수단 6주 3일 차

아침에 작전지로 이동하며 사는 곳 이야기를 하다 대장님, 3팀장님이 대전에 살아서 나중에 귀국하면 만나자고 하셨다. 심지어 3팀장님은 나와 같은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하고 계셨다. 전역 후 학교에서 뵈면 경례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다 집결지에 도착했다.

 

집결지에서 현지경찰들에게도 무선장비를 나눠주고 작전을 시작했다. 계속 앞으로 이동하는데 현지 사냥꾼들의 도축장이 있었다. 말이 좋아야 도축장이지 불을 피운 뒤 나무에 걸린 가축의 가죽을 벗기는 곳이었다. 다리하고 목은 잘려서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도로에 널브러 져있는 가축 뿔에 이동장비가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이동했다.

 

순조롭게 작전이 종료되고 현지경찰에게 무선장비를 회수하려는데 주지를 않았다. 본인들이 밤에 각 방향에서 매복해야 하는데 회수하면 경계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일개 병사인 나는 규정대로 회수하려 했지만 대장님이 이야기를 하더니 회수하지 말라고 하셨다. 공병대장님이 책임져줄 거라 믿고 그냥 철수했다.

 

철수하는데 피곤해하시는 대장님, 3팀장님의 모습을 처음 봤다. 찬물을 드렸는데 한 모금 드시고는 어제 벌에 쏘인 곳에 대셨다... 많이 걱정되었다.

 

저녁에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을 엄청 펐는데 고기는 정량배식이었다... 파병지의 진짜 스트레스는 제한된 보급을 일상에서 느끼는 것 아닐까...

 

 

남수단 6주 4일 차

아침에 작전을 나갔다. 별일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데 지휘통제실에서 현 위치 좌표를 송신해 달라고 했다. 위성장비로 계속 송신했으나 감명도가 너무 낮아 전달이 되지 않는 듯했다. 여러 장비를 모두 사용해 시도했으나 태양간섭 때문인지 전부 먹통이었다. 결국 타자기로 송신을 해서 해결은 했다.

 

점심에 전투식량을 먹는데 너무 더워서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건기가 시작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후 작전을 진행하는데 대규모 습지를 만났다. 당연히 우회로를 만들려 했고 UNMAS가 지뢰 탐지를 하며 꽤 먼 거리를 정찰했지만 근방이 전부 습지였다. 결국 3팀장님이 내일 정밀복구를 하는 판단을 내리셨고 근처에 2차 집적소를 구축했다. 중장비가 집적소 터를 구축하는 동안 UNMAS 직원들과 이야기하며 지뢰 탐지 장비를 구경했다. 대장님이 장비를 보더니 한국군에서도 이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UNMAS 차량에 가젤 사체가 있길래 "오늘 요리해 먹는 거냐?"라고 물어보니 "내 동생이 보관해 달라 했다"라고 대답했다.

차 세우고 주변 지뢰 탐지 중 / 작전지 어딘가

 

 

어제 단장님이 TOB(임시숙영지) 전개 전 작전인원 휴식 보장을 명령하셔서 칼철수를 했다. 철수하는 길에 1차 집적소에 집결했는데 현지경찰이 한 명만 남아있었다. "다른 인원 어디 갔냐"라고 물어보니 "현지경찰서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생필품을 구매하러 갔다"라고 대답했다... 좀 많이 불쌍해 보였다. 

 

 

남수단 6주 5일 차

아침에 1차 집적소에 도착했는데 현지경찰이 없었다. 심지어 지원해 준 물과 식량, 대여해 준 무선장비도 없어져서 급히 지휘통제실과 교신을 했다. 일단 선발대는 습지 정밀복구를 위한 준비 작업을 했다. 작업 도중 총성이 여러 발 들려서 정찰도 해야 했다. 

 

점심에 UN 직원들이 시찰을 왔는데 이 사람들에게 전투식량을 점심으로 챙겨줘야 한다는 내용을 갑자기 전파받았다. 그래서 모든 곳을 다 털어서 겨우 개수를 맞춰서 제공해 줬다. 와서 밥만 먹고 갈 거면 뭐 하러 오는지...

 

부대 일정이 있어 일찍 철수를 해야 했고 대장님이 명령하에 지휘통제실에 "12시까지 현지 경찰 협조 안되면 모든 장비를 주둔지로 이동하겠다"라고 무전 통보했다. 그런데 계속 현지경찰이 오지 않았고 협조과에서는 책임지고 데려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14시까지 현지경찰이 오지 않자 일부 병력은 먼저 철수했다. 그리고 15시쯤 협조과에서 현지경찰을 끌고 왔다. 협조과 통역병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주기적으로 밤에 집적소 주변으로 무를레족 인원들이 접근하는데 현지경찰 5명으로는 경계가 어렵고, 현지경찰서의 보급이 부족해서 도망간 거라고 한다. 현지경찰서의 비리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하여튼 어찌어찌 철수를 했다. 저녁 식사로 오징어 볶음이 나와서 라면 끓여 먹고 피곤해서 잠들었다.

집적소

 

 

남수단 6주 6일 차

아침 일찍 일어나 권씨, 정씨, 동료들과 UN 마켓에 과일을 사러 갔다. 일찍 가서 상태가 좋은 과일들을 살 수 있었다. 사과, 애플망고, 바나나, 파인애플, 수박을 구매했다.

마켓 가는 길에 발견한 새끼 황새 / UN 마켓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됐다. 낮에 발전기 냉각수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는 공지가 있었는데 결국 발전기가 죽어버렸다. 낮에 정전이 되니 에어컨이 안돼서 죽고 싶었다. 샤워라도 하려고 했는데 펌프가 작동 안 하니 물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저녁에 정전이 복구되고 간부님들께 과도를 빌려 애플망고를 잘라먹었다. UN 부식으로 들어오는 애플망고는 덜 익어서 새콤했는데 UN 마켓에서 산 애플망고는 잘 익어서 정말 달았다.

 

+ 뭘 잘못 주워 먹었는지 아침부터 설사를 했다. 화장실을 4번 정도 갔는데 정전 때문에 물을 내릴 수 없었다. 미안해요 여러분! 

 

 

남수단 6주 7일 차

별 일 없이 푹 쉬다 저녁에 다목적실에서 통신팀 회식을 했다. 보급으로 들어온 냉동삼겹살은 국내산이고, 냉동소고기는 미국산이라는 걸 알았다. 어쩐지 소고기는 맛이 없었다! 권씨가 라면을 잘 끓여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회식 (소는 안 먹음)

 

3. 마무리

벌 공포증 생김. 한국 와서도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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